역사의 현장/세계사 편력

선 오브 갓/ 예수의 생애/ 성경과 일치한가

안개 속 구름 2014. 4. 17. 19:48

 

영화 '노아'와는 달리 '선 오브 갓'은 성경에 기본적으로 충실한 것으로 조명받는 듯 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예수에 대한 세인들의 이미지가 성경의 내용을 얼마나 심하게 

각색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우수에 빠진 박애주의자' '섬세한 감성을 지닌 중성적 남성상' 이 두 가지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아무도 예수라는 인물을 그의 입장에서 감정이입을 하고 연기할 수 없다.  그는 신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진다.  그의 입장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고상한 이미지에 충실하게 덧 입히는 식으로 예수를 묘사하는 것 같다. 


성경에서는 예수를 때때로 다윗의 사자로 묘사한다.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원칙을 지닌 인물이라는 뜻이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예수의 망설임과 , 번민은 왠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성서에 나오는 겟세마네 동산의 피땀 기도 역시 자기 연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신성 모독이라는 죄명이 가져다 줄 아버지께 대한 수치에 대한 염려의 표출이었다는게 성경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묘사는 그냥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자선 사업가나 천주교 성인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어떻게 인류의 구원과 대속이라는 대 사업을 어깨에 짊어진 사람으로 볼 수 있겠나?






선 오브 갓의 예수는 왠지 미덥지 못하다. 그래서  의지할 버팀목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자력 갱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길을 택할 것 같다.  


성서에서 묘사 하는 하느님의 속성은 '사랑','공의','지혜','능력'이다.   이 네 가지 속성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하는 분이 하느님이라고 성서는 알려준다.  그리고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는 이를 가장 밀접히 반영한 분으로 묘사한다. 


공의 없는 능력은 폭력이고 능력없는 공의는 무능이듯이,  공의 없는 사랑은 감상 또는 낭만이다.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예수는 낭만적인 존재로 보일 지언정, 확고한 원칙에서 나오는 통쾌함이 없다.   앞으로 인류 심판을 위해 나타날 '인자'로서의 전사 이미지는 찾아 볼 수 없다.  


 세상의 도덕표준이 너무나 희미한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되겠다.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란 더는 경건한 정성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나 도움의 손길을 주는 '웨이터' 정도로만 생각한다.       하느님은 어디에나 편재 해 계시고, 자기 자신의 마음에도 거하는 일종의 정전기로 격하 시켰다.  이건 마치 자기 자신이 곧 신이니 , 멋대로 살아도 되는 존재라 생각하는 것과 같다.  왜?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니까....


마치 사랑 받을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어떤 응석을 부려도 오냐오냐 다 받들어 줘야 하는 사람처럼,,  이게 오늘날 사회복음을 전하는 기성 종교단체의 실상이다. 

그들은 실상 신자들의 주머니에 관심이 있지,, 그들의 영적 복지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으니까...  


 예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부른다는 뜻이 같이 놀자는 뜻으로 해석하는 이유는 무어란 말인가?   부른다는 것은  회개할 기회를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예수의 치렁치렁 늘어진 머리는 뭐란 말인가?   예수가 나실인었다는 말인가?    성경 어디에도 예수가 장발이었다고 알려 주지 않는다.  제자들과 함께 거닐때는 사람들이 예수와 제자를 구분할 수 없었다고 성경은 알려준다.  가룟 유다역시 입맞춤으로 예수의 신분을 나타낼 필요가 있을 정도였다. 


 상업과 종교의 밀접한 결합은 이렇게 사람들의 감정을 농락하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