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조선 왕조 실록

조선왕조실록-일본 군들의 사냥놀이 축제를 마련한 고종과 조정의 이벤트 감각

안개 속 구름 2014. 7. 26. 23:44

갑신 정변 이후에 청과 일본의 조선 간섭이 강화된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톡을 대체할 부동항을 호시탐탐 노린다.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영국은 상당한 위협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이 조선의 거문도를 점령한다.  영국은 2년 동안 거문도를 점거한다.  영국은 결국 물러가는 조건으로 러시아가 조선을 점령하거나 조차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종과 명성황후는 러시아의 새로운 가치를 주목한다.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좋은 세력으로 생각한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고종이 러시아와 가까워지도록 큰 역할을 수행한다. 

 청에서는 대원군을 돌려 보내면서, 명성황후를 견제하려 한다.  조선 백성은 대원군의 귀환을 환영한다.  고종은 인사말을 건네지 않았다한다.

 본시 청나라 이홍장이 조선으로 하여금 다른 나라와 교류하도록 권했던 것은 일본을 견제하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서구 열강의 개입 사건들은 그의 생각과 다른 양상으로 흐르게 된다.

 

갑신정변 이후 개화의 흐름: 개화가 어쩔 수 없는 대세로 조정 신하들 사이에서도 받아 들여진다.  관립학교를 세우고, 미국 만국 박람회를 다녀오며 , 근대식 병원 설립, 전신 가설, 외국 선교사를 통한 여러 학당 설립,  전등설치,  친위부대, 군함 도입 시도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방향과 목표 및 주체의 한계로 인하여 갑신정변 이후의 10년은 잃어 버린 10년이 되어버린다.  조선에게 있어서 개화발전의 귀중한 세월을 낭비하게 된 것이다. 

 


동학 세력의 확장: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였다.   하지만 최제우가 처형을 당하자. 2대 교주 최시형이 동학의 보급에 힘쓴다.   그의 노력으로 동학이념이 점차 확산해 나간다.  1892 1000여명의 동학 교도가 집회를 연다.   이로 인해 조정에서는 동학의 탄압을 시작한다.   성리학이 국시인 조선의 입장에서는 동학을 이단으로 규정한다.  동학교도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는 조정 집권 세력을 놀라게 한다.   결국 동학 세력은 본격적인 실력 행사를 한다.  동학농민운동이 반봉건, 반외세를 구호를 기치로 벌어지게 된다. 어느새 동학은 정치적인 세력으로 부상한다.   당시 전봉준이 동학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고종은 동학농민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외국 군대를 부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왕실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 한심스럽고 위험한 발상이었다.  결국 이런 생각은 후에 큰 화를 부르게 된다.

 





동학 농민 전쟁:  수탈에 힘쓰는 지방 수령들이 역시 내란의 원인이 된다.   전봉준은 때를 알리고 사발통문을 돌린다.  주동자를 알 수 없게 사발 모양의 글을 쓴 것이다.  고부 군수 조병갑을 목 베어 죽이고, 서울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먼저 전주 감영을 함락시키려 생각한다.   이전의 어느 민란보다 명분이나 의지가 뚜렷했다.  조정은 너무 다급해서 경군을 보낸다.  왕실을 보호해야 할 경군이 투입된 것은 조정의 걱정을 반영한다.   고종은 청나라 위안스카이에게 군대 파병을 요청한다.   문제는 일본의 태도였다.  톈진 조약에 따라 일본 군 역시 개입의 명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의 이홍장은 위안스카이의 파병 건의를 받아들여 출병하고, 일본에게 출병 사실을 통보한다.  청나라는 일본 군이 개입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조약은 단지 상호 통보만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청나라 역시 일본 군의 출현에 놀라게 된다.  조선 조정의 미래 판단 능력이 한심했음을 반증한다.   청군과 일본군 사이에 낀 농민군은 화력의 열세로 궁지에 몰리게 된다.    농민군들은 먼저 조선과 화약을 맺고 일본군의 철수를 요구한다.  사실 주둔 명분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철수 요구를 무시하고, 러시아의 중재도 무시하고 청나라와 공동 철수를 주장하며 시간을 끈다.   마침내 조선에게 청나라와 맺은 모든 조약을 파기하고 청군을 먼저 철수시키라 요구한다. 그리고 경복궁을 습격한다.  그리고 청나라에 선전포고를 한다.

 

일본의 속셈: 일본은 대원군을 활용하여, 정국을 장악하고, 농민군을 지지하는 백성들의 여망을 받들어 개혁을 수행하려 한다. 

 


청일 전쟁: 청나라는 일본의 선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전쟁 이외에 방법이 없었다.  서구 열강은 청나라와 청의 북양함대 이홍장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청나라는 일본군에게 철저히 패배한다.   

 

일본과 농민군과의 전쟁: 농민군은 동학농민폐정개혁 12개조와 집강소 설치를 조정 대표에게 요구한다.   하지만 일본군이 그들을 압도적인 화력으로 철저히 학살한다.  20만이 넘는 농민군이 죽었다.   하지만 동학농민운동의 반봉건 사상은 갑오개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