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고종, 대한제국선포, 광무개혁, 독립협회, 중추원
아관파천 이후의 정세: 고종이 환궁하여 황제로서의 길을 걷는다. 왕권 강화에 주력을 한다. 친러파 인재를 등용하여 왕권파를 육성한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가장 가까운 경운궁을 정궁으로 삼아 황제국을 선포한다. 고종은 겉으로는 사양하는 척하였고, 의정부 산하 다섯 대신들이 다섯 번 간청하여서 결국 수락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경운궁 주변에 외국 공사관이 많았기 때문에 안성맞춤이었다. 일본의 힘이 미치는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일부로 피했다. 고종이 황제가 되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더 이상 사직단이 아니라 환구단에서 제사를 지냈다. 명성황후도 이때 시호가 내려진다.
서재필: 서재필이 돌아와서 고종을 알현하였다. 서재필은 자신을 미국인으로 자처한다. 그래서 고종이 주고자 하는 관직을 사양한다. 하지만 중추원의 관직을 갖게 된다. 고문직이었다. 그는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건한다. 또한 대한제국 출범 한 달 후 독립문이 건립이 된다. 이 당시의 독립은 청에 맞선 독립을 의미했다. 독립협회가 창단되면서, 일반 백성들도 토론에 참여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처음으로 아래로부터의 민의를 수렴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의 역할: 민영환이 러시아 대관식에 맞춰서 러시아에 다녀왔다. 러시아는 만주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러시아는 일반적으로 조선의 요구에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고종이 요구하는 군대 파견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지만 고종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고종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러시아와의 교감을 원했다. 결국 러시아에서 알렉 세이프 라는 군사 교관이 오게 되었다.
독립협회와 고종: 서재필은 러시아의 진출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는 친미, 친일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종은 독립협회 때문에 러시아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을 애석하게 생각했다. 서재필과 선을 긋기 위해 고종은 그를 고문직에서 해임 시킨다. 서재필은 깨끗이 미국으로 돌아간다. 윤치호가 독립협회의 3대 회장이 된다. 윤치호는 독립협회의 구심점이었던 중추원을 의회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고종은 의회제도를 일언지하에 물리친다. 중추원은 국왕의 자문 기관에 지나지 않지만 의회는 권력을 나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종 커피 독살 미수 사건: 고종은 외국 공사들과 커피를 자주 마셔서 커피 애호가가 되었다. 그래서 고조의 습성을 이용하여 커피에 독을 타서 고종을 죽이려는 시도가 있었다. 고종은 커피 맛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뱉어 버렸다. 하지만 세자가 많이 마셔서 피해를 입었다. 고종은 암살자를 교형에 처하고 시체가 백성들에게 난도질 당하게 허락한다. 독립협회는 이를 야만적인 행위로 문제 삼아 고종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독립협회와 고종의 타협: 중추원 구성원 50명 중에 절반을 독립협회가 추천한 인사로 채우기로 한다. 의정부가 논의한 사항이라 해도 중추원에서 재심사를 받아야 하며, 중추원 자체에서도 안건을 제출할 수 있게 한다. 독립협회가 더 강성해지는 계기가 된다. 고종은 물타기를 위해 황국협회(보부상 단체) 인사들에게 중추원 8자리를 배정하라고 했지만 윤치호의 고집 때문에 원안대로 확정된다. 윤치호는 더 나아가 만민공동회가 아니라 백성과 관원이 함께 참여하는 관민공동회를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결국 시민단체의 토론회에 장관들이 참여하는 참신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관민공동회에서 헌의 6조가 채택된다. 하지만 보수적인 관료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독립협회 인사 체포 사건: 정부는 독립협회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 정부는 사전에 거짓 역모 소문을 퍼뜨린다. 독립협회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추진한다는 거짓 고발을 당한다. 그리고 고종은 독립협회 해산령을 내린다.
또한 협회인사들을 체포했다. 하지만 고종은 압력에 못 이겨 결국 인사들을 석방한다. 황국협회를 시켜 무력으로 독립협회를 해산시켰다는 것이 고종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그래서 고종은 독립협회 대표 200명과 군중들을 친히 만나기로 한다. 황제는 열한 가지를 죄목으로 열거하며 독립협회의 죄상을 밝히고 독립협회의 활동은 인정하나 만민공동회는 불허한다고 못박았다. 고종은 군대를 동원하여 백성의 집회 참여에 종지부를 찍는다.
대한국 국제: 고종은 대한제국의 헌법을 발표한다. 황제의 절대적인 권한을 명시했다. 학교, 은행, 전기, 전차, 철도, 군대와 같은 근대적 모습을 갖추게 하고, 황제의 의복과 신하들의 관복을 서양식으로 바꾸게 한다. 광무개혁이라고도 부른다.
대한제국의 의의: 고종은 사실 그 동안 대원군과 명성황후에 가려 존재감이 없었다. 대한제국은 고종의 마지막 승부수였다. 고종의 존재감을 알렸으며, 처음으로 고종이 주도적으로 많은 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으며, 개혁이 체계적이 아니라 너무 산만했으며, 독립협회의 에너지를 활용하지 못했다. 결국 시대의 조류에 성공적으로 편승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