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조선 왕조 실록

조선왕조오백년- 예종/성종 연간/남이의 옥사/경국대전/정희왕후/자을산군/세조묘호

안개 속 구름 2014. 6. 20. 22:57



 

사림파 출신 대간 들이 대거 정계에 진출하면서 영향력이 증가하게 된다.

대간과 대신은 마치 야당과 여당과의 관계와 비슷하다.  대간 분야를 사림들이 장악하게 된다.

그전에는 사림이 아니라 신진세력이 들어왔었고, 대신들도 과거에 대간을 거쳐 온 사람들이었다.

 

대간들은 대신들의 권력을 견제하고 비평하는 일을 주로 맡았다.

 

조선 왕 예종의 즉위

공신들 입장에서는 세조 집권기보다 예종의 집권 때 훨씬 편안한 환경이 된다.

세조 시대에는 세조의 권위에 감히 대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조는 공신을 중용했다.

예종은 어린 나이에 세조의 공신들과 맞서야 하는 힘든 상황에 직면한다.  예종은 19살 나이에 왕이 되었다.  

 

 

남이 장군의 옥사:  그는 세종의 외손자이다.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남이가 한명회 같은 구공신 세력을 없애려 했다는 생각을 했다는 빌미가 수면화 되자 역모라는 죄명이 붙게된다.  유자광의 고변이 발단이 되었다.  남이의 자신만만함과 처신의 미숙함이 자초한 일이었다.  사실 서자 출신 유자광의 고도의 정치 계략이 빚어낸 날조라는 게 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사관들이 사초에 손을 대는 일이 발생한다.  사관들이 왕 보다 대신들의 눈치를 본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들의 권력이 왕을 능가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사초는 국정운영의 중요 자료이기 때문에 사관이 함부로 소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예종의 성격: 아버지 세조의 묘호를 정하는 상황에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관철시킨다.  아버지의 시호를 정할 때에도 밀어 부친다.  심지어 자신의 묘호를 미리 정하기까지 한다.   인사청탁을 금지함으로 공신 세력을 견제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분경금지).  12개월의 짧은 재위 기간을 보인다.  비록 재위 기간이 짧지만 오랜 세자경력에서 나온 경륜이 있었다. 

 

성종의 즉위: 후계 순위로는 3순위 자을산군이 왕위를 계승한다. 보통은 즉위식이 삼사흘이 걸리는데 , 후사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신속히 결정된다.   너무 어린 왕자들이 왕이 되면  위험하다는 판단이 자을산군의 장인 한명회의 뜻 그리고 대왕대비의 뜻과 합치 되어 결정된다.

정통성으로 보면 월산대군이 우선이었지만 한명회라는 배경덕분에 졸지에 왕이 된다.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성종의 의견에 따라간다.  하지만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의 사례로 거론된다.   이후 문정왕후같은 대비는 적극적인 정치행위를 하는 기회로 사용하게 된다.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와 예종 안순왕후의 서열관계를 정희 왕후는  과감히 정한다. 소혜왕후를 더 격상시킨 것읻.  성종의 왕권을 강하게 하는 결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