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역사와 문화 - 태국의 온정주의 습성의 뿌리
외부의 시각으로 태국을 볼 때 단순히 불심 깊은 불교의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태국은 무수히 많은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종교가 있다. 다수 종족은 타이 족이다. 그 밖에 몬 족이나 크메르 족도 있고 중국계 화족도 있으며, 니야우 족, 흑타이 족, 쿠이족, 인도네시아계 사람도 있다. 특히 남부는 말레이시아와 연결 되어 있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종족이 80%를 차지한다. 이 지역사람들은 종교, 문화, 역사 , 언어도 타이 족 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이 지역은 무슬림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역사적으로도 남부의 빠따니 왕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이 태국에 완전히 편입된 것은 2차 세계 대전 태국과 영국의 영토 조정 때 있었다.
태국 지역은 열대 지역이긴 해도, 일년 내내 먹을 것이 풍족하고 잠자리와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기 좋은 지역이다. 그래서 13세기 수코타이 왕조 이전에도 사람들이 거주했다고 보고 있다.
중국지역 사람의 말레이반도 이주: 중국 남부 지역에 살던 민족이 말레이 반도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약 1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그 당시 몬 족, 크메르 족, 타이 족이 같이 내려온 것으로 여겨진다. 몬 족과 크메르 족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로 대변 되는 크메르 문명을 만들어 냈다.
태국의 본격적인 등장: 타이 족은 처음에는 큰 왕조를 구성하지 못했지만 본격적으로 11세기 내지 12세기에 지금의 태국에 타이 왕조를 세우기 시작했다. 타이 족 사람들은 중국의 운남성에서 12세기 경에 지금의 태국으로 본격적인 이동을 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 시기에는 동남아시아의 크메르 문명이 워낙 왕성했기 때문에 타이 족 만의 특정 왕조가 세워진 것은 13세기 수코타이 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수코타이 국가가 크메르와 구분이 되는 것은 국가의 기반을 불교로 삼았다는 것이다. 크메르는 힌두교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른 종족들은 타이 인을 시암이라고 불렀다. 샴 고양이, 샴 쌍둥이라는 말도 이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다. 하지만 타이 인들은 그들 스스로를 줄곧 타이 족이라 불렀다. 시암은 일종의 외래어인 셈이다. 1939년 전에는 태국의 국호가 시암이었다.
수코타이 왕조: 태국 최초의 왕조이다. 태국 문자가 창제된 시기도 이 때인데, 정확히 수코타이 왕조의 3대 왕인 람캉행 때 였다. 람캉행 비문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는데, 태국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료이다. 이 비문에 쓰여 있는 글이 타이 문자이며, 당시의 언어, 경제, 사회, 문화, 종교까지 기술하였다. 당시에 관세 없는 자유 교역을 했고, 불교를 기반으로 하는 온정주의적인 통치를 했다는 사실을 비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아유타야 왕조: 수코타이와 마찬가지로 불교를 숭배 했기 때문에 많은 고대 사원이 있다. 특이한 사항은 사원의 불상들이 머리가 없다는 것이다. 미얀마가 쳐들어 왔을 때 머리를 잘라 갔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얀마와 태국 사람들의 감정이 별로 좋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유타야에는 신분제가 존재 했다. 군주, 귀족, 평민, 노예로 나누어졌다. 신권 사상이 도입이 되어 왕이 모든 국토의 주인이며, 백성의 생명의 주인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왕이 귀족 관료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귀족들은 평민들이 이 토지를 경작하게 했다. 농경국가인 태국은 토지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토지를 매개로 한 이런 신분 질서는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다. 태국의 정치, 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더딘 사회 발전이 이런 관계 설정에서 비롯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