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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조선 왕조 실록

조선왕조실록-인종과 명종 시대, 권력의지의 향연/ 을사사화

 중종의 맏아들 인종이 승하하였다 . 재위 기간이 8개월뿐이었다.    인종의 세자 시절, 조야의 존망을 받았던 반듯한 성격이었다.  신동 소리를 들었던 영민한 성격이었고, 착하고 다정다감했다. 학문도 깊었다고 한다.

문정왕후가 비록 계모였지만 효행을 잊지 않았다.  문정왕후는 그의 어진 성품을 악용하여 그를 괴롭혔다고 한다.  중종의 모호한 태도는 인종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친다. 중종 역시 현 왕비인 계비 문정왕후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유교적인 예법에 출실하여 인종은 중종의 죽음 후 상을 치르는 과정에 너무 많은 체력 소모를 하였다.  잘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문정왕후에게는 인종을 도모할 수 있는 호기로 작용하였다.   인종의 박명은 조선의 상장례문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인종은 또한 동생을 아꼈기 때문에 문정왕후가 대놓고 자신의 아들 경원대군을 세제로 삼을 것을 요구하였을 때 수락하게 된다. 

 


 명종 즉위:  명종이 왕으로 등극했을 때 인종의 부인이 수렴 청정을 하는 방안이 논의 되었지만 결국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수행하게 된다.  인종이 죽게 되자 윤임이 가장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문정왕후에 의해 숙청 당하게 된다.  윤임은 대윤의 수장이었고, 소윤의 수장은 윤원형이었다.  소윤 측은 문정왕후라는 뒷배가 있었지만 대윤의 유일한 카드는 인종이었다.  인종은 장경왕후의 아들이었고 윤임은 장경왕후의 오빠였던 것이다.

 




 문정왕후의 업적: 정권안정에 큰 기여를 한다.  일부로 소윤 세력을 견제하는 척 하면서 대윤들을 놀라게 한다. 윤원로는 문정왕후의 오빠였다 하지만 윤임과 김안로와 대립했다는 이유로 유배당한다.  나중에 대윤을 공격하는데 필요한 명분을 얻는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문정왕후의 놀라운 정치감각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는 용인술에는 자질 부족을 드러낸다.

 

 을사사화: 소윤 세력이 대윤 세력을 제거한 정치 사건이다.  사화라고 부르는 이유는 왕의 외척인 윤임 뿐만 아니라 그와 연계된 사림파가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훈구 세력이 사림 세력에 큰 타격을 가하고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을사사화는 문정왕후의 승리를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