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들이 수탈을 할 방편으로 사용한 것이 환곡 정책이었다. 이전에 군역의 폐단이 있었다. 영조 임금이 폐단을 어느 정도 없앴다. 그래서 수령들이 환곡을 악용하게 되는 것이다.
철종 13년 2월 29일 경상 감사에게서 왕에게 급보를 올린다. 진주 민란이 시작된 것이다.
철종은 난의 발단이 된 백락신을 유배 보내고, 반란 주동자들을 처형한다. 이후 백락신은 다시 등용이 된다. 이러한 일 처리 방식이 항상 문제의 불씨를 남기게 된다. 백성의 입장에서는 봉기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었다. 나라의 구조적 모순이 일거에 터지게 되는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기층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게 된 것이다.
삼정 문란에 대해 조정이 박규수를 파견하여 실태를 조사 하게 한다. 박규수는 조사를 한 후 개혁방안을 상소한다. 상소가 수용이되어 삼정이정청이라는 관청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문제는 삼정이정청의 핵심 인물들이 개혁 대상자였다는 것이었다. 박규수는 적임자를 책임자로 임명하라고 상소 하였지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게 된 것이다. 결국 실효성 없이 지나게 된다. 특권 신분층의 자기 모순 극대화였다. 조선의 도덕적 해이는 극에 달한다.
조선은 애시 당초 고려의 체제 모순을 극복하려는 일환에서 출현한 국가이다. 사대부 즉 양반은 동반 서반을 나타내는 관직의 구분이었지 신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과전법의 폐단이 새로운 세력을 키우게 된다. 시경의 논리에 따라 모든 땅은 왕토 즉 왕의 땅이다. 그리고 조선 초기 화폐 체제의 부재 때문에 관료들에게 땅의 수조권을 급료로 주게 되었다. 그리고 원칙상 수조권은 세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관직에 물러나서도 수조권을 반납하지 않는 자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민간에서 경제 활동도 하지 않으면서도 놀고 먹고, 학연과 지연으로 정계에 영향을 주는 세력이 생겨나게 된다. 그들이 바로 사림이다. 전세계 역사상 사림이 정치를 하는 사례는 유례를 찾아 볼 수 가 없다. 그리고 조선은 전체적으로 문약에 흐르게 되고, 성리학이 심화된다. 조선 중기가 되면 이제 양반 즉 사대부가 관직이 아니라 특권 신분이 된다. 그리고 양반들의 비대해진 권력은 세력의 분할을 가져오고, 붕당들이 생겨나게 된다. 조선 후기에 다행이 영조, 정조 등이 출현 하며 왕권 강화를 힘쓰지만 새로운 학문이 아니라 기존 성리학의 틀에 안주했던 한계가 있었으며, 재야에 있고 정치적으로 소외된 자들이 실학을 연구하는 구조적모순을 지니게 된다. 결국 최종적으로 세도정치라는 인간의 최소 생존 조건마저도 위협하는 가장 열악한 정치생태계가 형성된다.
대외 환경: 청의 건륭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조선처럼 사치와 부정부패가 심해지게 된다. 여기에서도 백련교도의 난이 터지게 되고 영국의 아편전쟁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난징 조약이 맺어진다.
동북 아시아의 패자인 중화권의 붕괴는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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