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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세계사 편력

인도의 고대 문명과 종교, 및 카스트 제도에 대한 이해

  인도는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이다.  인도 서쪽에 있는 인더스 강 유역에서 발원하였다.

아주 융성한 고대 문명을 이루었다.  발굴 기록에 따르면 굉장한 고도의 계획 도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중앙 아시아에서 내려온 아리아 인이 인도의 북쪽으로 와서 기존의 원주민을 내쫓고 문명을 이루었다.  아리안 족은 코카서스 인종인데 일부는 유럽으로 일부는 인도로 온 것이다.  이란이란 말도 코카서스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도어는 인도 유럽어족이라 불린다.  19세기 학문의 수준으로는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같은 인종으로 봤기 때문에 히틀러는 아리안족에 대해 흥미를 가졌었다.  히틀러의 주장은 이랬다.  "인도의 브라만들이 수천 년 동안 자신의 혈통을 유지 한 것처럼 자신들의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제거해야 한다" 인도 유럽어족이라는 명칭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인도어는 공식 언어만 해도 22개이다.  히틀러의 주장은 어불성설인 것이다.ㅋㅋㅋ

 


 인도는 또한 세계의 종교 전시장이다.  대표적인 종교는 불교와 자이나교이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지만 극동으로 전래 된다.   인더스 문명을 물리치고 왔던 아리안족은 점차 인더스에서 훨씬 비옥한 겐지스로 옮겨 간다. 기원전 1500년 경 되면 겐지스 상류로 오고,  기원전 1000년 경 되면 중류로 온다.  거기에서 농경 사회를 일구는데 물질 문명이 발달하게 되면서 상공업과 화폐 경제가 발달하게 된다. 

자연히 경제적 힘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그들은 유목사회에서 브라만이 가지고 있는 힘 보다 세속적인 힘을 가진 자신들이 주도하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이때 자이나교나 불교에 심취 했던 계층이 크샤트리아 계층이다.   

유목 사회가 일정한 구역에서 정착된 왕조 국가로 변하면서 브라만들의 주술적 힘보다 좀더 상공업을 주도하는 계층에 호소력이 있는 종교가 더 바람직하게 여겨졌는데, 왕족들이 크샤트리아를 지원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불교는 일반 민중들에게 설법을 함으로 진리를 공유했지만 이전에는 브라만이 독점하였었다.  처음으로 이때 모든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종교가 생기게 된 것이다. 

 


 브라만과 힌두교의 관계: 브라만은 사제 계층이다. 브라만교를 바탕으로 해서 각 지방의 종파가 결합하여 힌두교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유목 사회 시절에는 삶이 불확실 했기 때문에 불안한 감정을 달래기 위해 사제 즉 브라만의 도움이 필요했었다.   가장 높은 계급은 브라만이었고, 그 다음으로 왕족이나 군인들이 크샤트리아라는 두 번째 계급이었다.  세 번째는 상업이나 공장을 운영하는 계층인 바이샤 들이다.  네 번째는 노예 계층인 수드라이다.  현재 인도 헌법은 신분제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수탈을 겪어 왔던 하층 계급을 보호하는 법률을 운영함으로 역설적이게도 카스트 제도를 인정하는 모순을 겪고 있다. 

 





 서양의 관점: 기원전 326년 유럽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당시 세계의 끝으로 알려졌던 인도까지 진출하였다. 인도에는 알렉산더에 대한 기록이 하나도 없다.  다만 알렉산드로스가 철군하면서 남겨 놓은 장군의 딸과 나중에 인도 마우리아 왕조를 창건한 찬드라굽타와 결혼하게 된다.  찬드라굽타는 어렸을 때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알렉산드로스의 무용담을 듣고 꿈을 키웠고 마우리아 왕조를 세웠다고 한다.  이후 그 마우리아 왕조의 수도에 그리스가 대사를 보낸다.  그 그리스인은 훗날 돌아와서 마우리아 왕조에 대한 글을 남긴다. 그 글이 유일한 사료가 되어 현재 사학자들이 마우리아 왕조의 시기를 추정하는 것이다.  마우리아 제국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군주는 아소카 왕이다.

 


 아소카 왕: 그는 불교 경전에도 등장하는 왕이다.  인도 제국은 너무 거대해서 다양한 인종이 다양한 언어를 쓰는 것이 통합에 장애가 되었던 시점에 아소카 왕은 스스로 불교로 개종하여 제국의 안정을 노린다.  불교는 평등 사상을 내세우기 때문에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기가 유리했다

하지만 아소카는 백성들에게 개종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는 백성과 소통을 하는 훌륭한 왕으로 지금도 인도인들의 사랑을 받는 군주이다.

 

굽타 왕조: 인도가 자랑하는 인도 역사의 황금기로 손꼽는 시대를 구가한 왕조이다.  특히 힌두 문화의 황금기였다.  힌두 사원, 벽화, 조각 상들이 많이 남아있다.  힌두교가 공식적인 국교로 인정했던 왕국도 굽타이다.  힌두교는 전에 있었던 브라만교, 애니미즘, 토테미즘 등 여러 토속신앙이 융합한 것이다.  지금도 인도인들은 굽타를 가장 인도적이었던 국가로 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