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는 7세기에 탄생한다. 8세기 정도 되면 이미 인더스 강 까지 온다. 하지만 인도 본토에는 들어 오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도 북부를 장악한 왕국의 힘이 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 3세기 후에, 중앙 아시아 쪽에 있었던 이슬람 세력이 인도 중앙을 노리게 된다. 산악 지역에 사던 무슬림들이 인도에 쳐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가 바로 가즈니 왕조의 마흐무드라 왕이었다. 무려 17차례나 인도를 침범하였다고 한다. 인도에서 재물을 약탈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가즈니 왕조가 멸망한 뒤에 들어선 왕국이 구루 왕조인데 이 역시 인도를 약탈하는 데에만 주로 관심이 있었다. 다만 그 나라의 한 장군이 인도에 남아 술탄 왕국 하나를 세웠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이 먼저 이슬람화가 되고 그들이 인도의 일부를 계속 약탈 했다는 것이다.
무굴 제국: 앞서 구루 왕조에 의한 술탄 국이 세워진 게 1206년인데 그 이후 약 300년간 약 5개의 술탄 왕국이 들어선다. 이들 술탄국을 물리치고 하나의 술탄 국이 들어서게 된다. 드디어 인도에도 이슬람 왕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무굴이란 페르시아 말로 몽골이란 뜻인데 창건자가 몽골 부족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도 땅이 굉장히 넓고 부유했기 때문에 1526년에 델리를 점령하고 무굴이란 나라를 세우게 된다. 영국이 올 때까지 굉장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중국과 더불어 세계 경제력 1,2위를 다투었다고 한다. 동시대의 유럽보다 훨씬 더 잘살았다. 이슬람이 인도에 온지 한 500년 되었을 때 이슬람과 인도 문화가 결합된 건축 양식인 타지마할 묘지가 생겨나게 된다. 인도는 힌두교 국가로 알려 져있지만 무굴은 이슬람 제국이었다. 무굴이 쇠퇴할 때 비로서 영국이 등장하게 된다. 영국이 자신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 하기 위해 타지마할을 상징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인도의 향신료: 바스코 다 가마가 왔을 때 인도의 향신료는 전성기였다. 인도는 후추 생산을 독점하는 나라였다. 후추 한 알은 진주 한 알에 맞먹는 가격이었다고 한다. 초반에는 무굴의 힘이 셌기 때문에 유럽은 저 자세로 교역을 했다. 하지만 슬슬 힘이 역전 되기 시작하면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의 주도 아래 인도에 동인도회사가 설립된다. 하지만 무굴이 아직 전성기였기 때문에 저 자세였다. 1700년대 중반 까지는 동인도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지 못했고 눈치를 보았다. 1700년대 중반 이후에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여 인도는 영국에게 시달리게 된다.
1800년 대 중반에는 세포이 항쟁 같은 저항 운동이 있었다. 이 항쟁이 어찌나 거셌는지 영국의 정권이 끝장 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영국인은 더 이상 인도 사람들에게 영어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마하트마 간디가 주도하는 비폭력 저항주의 때문에 인도 사람들이 참여하기 쉬운 독립운동이 일어 난다. 이 운동의 파급효과가 너무 컸기 때문에 결국 영국은 두 손을 들게 된다. 대형 유혈 사태로써 독립을 쟁취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웃으면서 헤어졌다는 우스게소리가 나왔다. 지금도 인도는 영연방에 가입된 나라이다. 영국과 인도의 관계를 한일관계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이때문이다. 하지만 식민지 지배의 여파로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국가가 분리 된다. 종교로 인한 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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