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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조선 왕조 실록

조선왕조실록-정조, 척신 정치 쳑결 및 왕권 강화/홍봉한/김귀주/홍국영

영조, 정조 정권 교체시기의 정국: 척신 사이의 권력싸움이 본격화 된다. 홍봉한의 독주가 있었고 노론은 이를 경계한다.   정순왕후의 오라비 김귀주의 세력도 등장한다. 홍봉한이 세손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일로 인해 김귀주는 세손의 보호자로 자처한다.   홍봉한은 자신의 외손자가 집권하면 자신에게 위험할 수 있겠다 생각한다. 그는 세손의 대리 청정을 저지하기까지 한다.   영조 말년에 화완옹주의 양자 정후겸과 홍인한 세력이 연합하여 당분간 강한 세력이 되기도 했다.

 

서명선의 상소: 영조51 12 3일 대리청정을 저지하며 홍인한이 동궁은 정치를 알 필요가 없다고 발언한 사실에 대해 비판하는 상소를 올린다.  그는 동궁이 알 필요 없다면 누가 알아야 하는가라고 말한다.  영조는 이를 지지한다.   대부분의 신하들이 정후겸의 눈치를 보며 말하지 않을 때 홍국영의 도움으로 서명선의 상소가 성공하게 된다.   정조는 왕이 되었을 때 서명선을 공신으로 올린다. 그리고 정조는 12 3일을 대대적으로 기념한다.   사실 세손이 직접 홍인한을 반격할 상소를 올리려 했으나 서명선이 대신 해준 것이었다.  세손이 대리청정을 하고 나서 석 달 만에 죽게 된다. 

 


정조의 등극: 조선의 22대 왕으로 등극한다.  그는 경희궁에서 즉위식을 갖는다.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한다.  신하들이 모두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여했기 때문에 긴장하게 된다.  하지만 정조는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승하지만 사도세자 추승은 유보하겠다는 말을 함으로 긴장 국면을 완화시킨다.   영조는 죽기 전에 김상로가 사도세자 죽음의 원흉이다 라고 말함으로 정조에게 국면전환의 빌미로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김상로와 관련된 영조의 후궁은 숙청 당하게 된다.  정후겸, 홍인한을 유배 조치한다.  이 과정에 역모가 들어 나게 된다.   비록 혜경궁 홍씨가 정조의 어머니이지만 단호하게 홍인한을 친다.  김귀주는 홍봉한까지 치라는 상소를 올리지만 정조의 예봉은 오히려 김귀주에게 돌아간다. 김귀주는 유배를 당한다.  정순왕후는 몹시 충격을 받는다.  정조는 김귀주의 됨됨이를 위협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정조는 정국 운영 초기에 척신 정치 척결을 기조로 삼았다.





 정조는 처음부터 왕당파를 키워서 가려 했다.   그는 척신정치를 배제하고 왕권을 강조하는 제스쳐를 취한 것이다.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즉위 초까지 경희궁에 머물렀다.  정조는 세손 시절부터 암살위협에 시달렸기 때문에 밤을 새며 책을 읽는 습성이 있었다.  



 

역모: 홍인한 세력이 유배 되었을 때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자주 정조와 홍국영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한다.  정조의 이복동생 중에 은전군이 추대 되었다는 증언이 나오자, 정조는 갈등한다.  하지만 결국 은전군을 사사시키기로 결정한다. 

 

홍국영: 정조 즉위 후 도승지를 맡게 된다. 정조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다.  하지만 도승지, 병권, 재정권을 갖게 된 홍국영은 자만에 빠져 무리수를 많이 두게 된다. 자신의 누이 동생 원빈이 죽고 나자 상계군을 원빈의 양자로 들이고 후계 구도를 노린다.  정조는 홍국영을 내치기 위해 그의 실수를 유도했을지도 모른다.  정조는 홍국영에게 직접 물러나게 하고 명예 퇴직 시킨다.

하지만 홍국영 측근의 실수로 결국 홍국영도 유배를 당한다.  서명선을 건든 것이 화근이었다.

유배지에서 홍국영은 젊은 나이에 화병으로 죽는다